배려 1

[스크랩] 우화의 강/ 마종기

향기로운 재스민 2011. 12. 14. 04:35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이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시집 『그 나라 하늘빛』(문학과지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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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이모우가 연출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공연은 공자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란 메시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참으로 좋은 벗을 갖는 것은 인생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물길을 트고 강이 되어 깊고 맑게 흐르는 것보다 더 큰 기쁨도 드물지요.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는 공통된 소망입니다. 그런 강물 같은 친구와의 지란지교는 삶에서의 가장 큰 의미일 수 있겠으며 축복이기도 합니다.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부분 인용)이면서 유장하고 불변한 친구는 寓話에나 나올법한 친구일까요? 누군들 물길을 트듯 마음이 통하는 친구 한 둘쯤은 왜 없겠습니까만, 냉정하게 되짚어보면 저토록 은은한 고품격의 우정을 오래도록 나누고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을’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처럼 흐르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그저 같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한 마을에서 자랐다는 조건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해가 다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는 도무지 없는 것이지요. 여러 친구들과 밥을 함께 먹고 술을 같이 마십니다마는 그들은 내게 어떤 벗이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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