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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개똥참외에 관한 추억

향기로운 재스민 2012. 3. 31. 06:43

 

 

 

 

어렸을 적 늦여름 들판에 나가면 먹어볼 것이 별로 없어

제주어로 갈제기, 간잘귀 등으로 불리는 개똥참외를 찾았다.

목화밭이나 콩밭, 또는 고구마 밭까지 샅샅이 뒤지다가

동글동글 몰려 익어가는 노란 개똥참외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어떤 때는 빈 밭에 무더기무더기 줄기와 잎이 몰려 있고

그 속에 탱글탱글하게 익어가며 노란빛이 자르르 도는 것은 쓰지 않아 

우선 하나 뚝 따서 옷에 북북 문지르고 와드득 깨물면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떠돌며 입안 가득 씨가 쏟아진다.


설익은 것이나 꼭지 부분을 잘못 씹으면 너무 써서

한참 동안 퉤퉤 뱉어 내고 침으로 헹궈내야만 한다.

특히 가을 곡식을 거둬들이다 발견한 샛노랗게 잘 익은

놈을 찾아내면 진짜 고소하고 맛있어 기쁨이 두 배.      


지난 번 벌초 때 고조할아버지 묘소에 다녀오다가 보았는데

엊그제 그 주변에 가보았더니 줄기는 말라버리고 아무도 안 따먹어

곳곳에 이렇게 널려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찾아보았더니

‘길가나 들 같은 데에 저절로 자라서 열린 참외’라고 했는데 종자가 다르다.


사람이나 짐승의 배속에서 씨가 소화되지 않아 거름에 섞였다가

밭으로 퍼지는데, 전 해 있었던 자리를 찾아보면 썩는다든지

밟아 터져버린 씨앗이 남아서 주위에 퍼지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참외와 교배되면 이듬해 두 종을 닮은 중간 크기의 것이 달린다.

 

 

♧ 개똥참외 - 김순진


지지리도 모래알 같은 수수야 조야

사팔뜨기 동부야

또 하나의 상형문자

외톨박이 도토리야

내가 아무리 보잘것없기로서니

말도 걸지 않는 바랭이야


너희들 모두 한통속이고

나만이 왕따구나

외로워 노래졌고

기다림에 달아졌다면 믿겠느냐


소 풀 뜯기던 아이는

나를 가장 반기는도다

추억 살라 불깡통 돌리며

동네 한 바퀴 돌고 싶다

저 소년아

 

 

♧ 개똥참외 - 반기룡


명예도 자존심도 초개처럼 내 팽개쳤지

발길질 무서워 한쪽에 웅크리며 노란 꿈꾸었지

이끼처럼 음습하게 살아온 시간의 궤적

푸른 잎맥 훔쳐보고 무장무장 달려와

볼때기 마구 부비는 넉살스런 햇살 한 줌

햇살이 간지르면 노란 발작이 옹알이를 하지

아직 개화되지 않은 수줍은 배짱으로

온 몸을 땅바닥에 펑퍼짐하게 또아리 틀고

달빛 불러 애무하고

햇볕 불러 일광욕하면

어느새 노란 옷으로 색깔을 달리 하네

보는 이 없어도

찾는 이 없어도 나의 노란 꿈이 익을 때까지

퇴적된 자양분 먹으며 꼿꼿한 몸치장하고 또 해야지 

 

 

♧ 개똥참외 - 윤인환


고향이 어딘지

누가 씨앗을 뿌렸는지

묻지 말라.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우주 끝자락

넓고 넓은 대지에서

하필이면 냄새나는 두엄 가에

어찌 누워 있는지

중요한 건

곰팡이 핀 족보가 아니라

이 시간 숨쉬며 존재 한다는 것


별이 빛나는 새벽마다

이슬을 기다리는

작은 희망 속에 있는 것


외롭고 슬프지 않느냐고

사는 게 힘드냐고

이것저것 묻지 말라


애처로이 기억하려 애쓰지 말라


이렇게 사는 것도

우리네,

또 하나의 삶일 테니까.

 

 

♧ 곰소에 가면 - 김준태


곰소에 가면

전라북도 변산 반도

곰소의 바다

온통 그리움으로 시퍼렇다


곰소에 가면

갑오년에 서해로 쫓겨나온

정읍 무장 고창 백산의 소나무들이

더 이상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검게 타버린 소금 바위에 뿌리내려

우우우우우 100년 200년을 울부짖는다


아아 곰소에 가면

전라북도 변산 반도

곰소의 어머니가

조선의 개똥참외보다 더 달고 야무진 

아들딸들을 줄줄이 낳으며 살고 있다

곰소에만 있는 뻘밭에 깊숙이 들어가

서해의 파도와

낙지 녀석의 먹통 대가리를 억척스럽게 집어 올리는,

 

 

♬ Una Furtiva Lagrima(사랑의 묘약 中) 남몰래 흘리는 눈물

 

출처 : aowlr1004
글쓴이 : 수호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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