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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둔 고래/최영정

향기로운 재스민 2013. 6. 6. 08:02

 

 

 

 

벗어둔 고래/최영정

 

 

밤새 헛기침하는 저 구두

신발장에서 꺼내 한 손에 낀 채 닦아내다가

밑창에

작게 뚫린 고래의 숨구멍을 보았다

 

 

비가 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컴컴한 동굴 같은

저 안에서 솟구치고 숫구쳤을까

 

 

내 마음이 내딛는 자리마다

생겨나는 커다란 물웅덩이에

빠진다.

 

 

정년퇴임 후 아버지가 가지런히 벗어둔

저 구두는

숨 쉬러 물밖으로 가끔 뜬소문처럼 올라온다는

고래들처럼

요즘엔

경조사 빼곤 좀처럼 밖을 나서는 법이 없다.

 

 

다시 마른

헝겊만으로 구두를 닦고 또 문지르는데도

무슨 일인지

자꾸만 눈부신 물광이

구두에서 난다.

 

 

 

* 2013. 신춘문예 당선시  경제신문

  상상 발상법

 

 

 2013. 06. 06   향기로운 재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