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달팽이/김순진

향기로운 재스민 2014. 3. 29. 07:54

 

 

 

 

달팽이

 

김순진

 

 

달은 팽이다

이울어 죽을 듯 죽을 듯 하다가도

도로 일어나 돈다

달팽이가 제 집을 찾아갈 때까지

달팽이가 달팽이관觀을 확립할 때까지

달은 팽이로 돈다

달은 서랍에 든 한낮에도 돌기 위해 주문을 외운다

돌고 도는 쳇바퀴 같은 인생

나는 달팽이가 되어 달을 돈다

기어가는 것이 도는 것이란 학설은

코페르니쿠스도 갈릴레이도 발견치 못했다

달팽이는 스스로 껍데기를 말아 올려 종횡으로 자전한다

달팽이더러 더 이상 돈다거나 어지럽다고 말하는 것은

서랍에 든 팽이와 채찍을 망각하는 처사

저 달팽이는 스스로 채찍을 가하며 죽지 않는다

달과 팽이는 모두 사선으로 도는 팽이

나는 오늘도 삶의 사선을 돌고 있다

 

  

-『불교문예』(2013, 가을)

 

* 시와 시와 카페에 올려짐   유석

 

 

2014. 03  29

'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차를 놓치다/손세실리아  (0) 2014.03.31
[스크랩] 목련 후기(後記)/ 복효근  (0) 2014.03.30
기억형상합금/공광규(1960 ~ )  (0) 2014.03.24
순두부/신달자  (0) 2014.03.17
화개화사 花開花謝/매월당 김시습  (0) 201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