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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련 후기(後記)/ 복효근

향기로운 재스민 2014. 3. 30. 19:37

 

 

목련 후기(後記)/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듬들이

타다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품었던 분수같은 열정이

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 시집『마늘촛불』(애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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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은 더럽혀지기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고재종의 '목련의 꿈'이란 시가 있다. 목련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시인들은 그 낙화를 슬퍼한다. 박주택은 ‘전 생애로 쓰는 유서’라 했고, 류시화는 목련의 이른 결별을 두고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고 했다. 또 성기완은 ‘구체적으로 서러워’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반도의 아래에는 목련이 지고있고 또 위쪽엔 목련이 피고 있다. 언제까지나 예쁘게만 살려고 하는 여자들에게서 우린 흔히 "나는 60까지만 살래. 더 늙어지면 추할 거 같아..."란 소리를 듣는다. 아름다운 꽃의 생명주기를 닮고 싶은 열망이고, 귀엽기 짝이 없는 언사이긴 하지만 대체로 그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늙어갈 것이다.

 

 다른 꽃에서도 그런 감상이 생성되기는 하지만, 특히 목련의 지는 모습에서 그 멜랑꼴리는 구체적으로 심화 학습된다. 봄의 첫 빛을 반사하여 흰빛이 더욱 눈부신 꽃잎. 그러다 다른 유색의 꽃들이 퐁퐁 터질 때면 이미 목련은 누런 수의로 갈아입고 맥없이 땅으로 낙하한다. 이 무렵의 꽃잎은 피돌기라도 하는지 맥박과 호흡이 느껴진다. 유난히 도톰하고 살점을 만지는 것 같은 질감으로 한 잎 한 잎 개체로서의 꽃인 양 생명인 양 착시를 유발한다.

 

 잎보다 먼저 피어서 질 때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목련의 생태적 특성을 ‘순백의 눈’에 비유하여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라고 사람들의 사려 깊지 못한 사랑을 넌지시 나무라고 있다.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의 비장한 결별이 반드시 온당하고 아름답기만 할까.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은 것이다.

 

 서럽기는 마찬가지고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흩뿌려질 때는 누구나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 올려다보며 눈물을 심을 터이지만, 꽃을 피우는 것 못지않게 꽃 지는 것 또한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으리라. 그늘과 노을, 주름과 일몰이 아름답지 않고서는 어디 세상이 살아갈만한 곳이겠냐고...

 

 

권순진

 

목련화 - 테너 엄정행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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