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에서 피는 꽃/ 이사랑
청석골의 단골 수선집 늙은 재봉틀 한 대 |
아마, 지구 한 바퀴쯤은 돌고도 남았지 |
네 식구 먹여 살리고 아들 딸 대학까지 보내고 |
세상의 상처란 상처는 모조리 꿰매는 만능 재봉틀 |
실직으로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고 이별로 찢어진 가슴과 술에 멱살 잡힌 셔츠를 |
감쪽같이 성형한다 |
장롱 깊숙이 개켜둔 좀먹은 내 관념도 새롭게 뜯어 고치는 재봉틀 |
작은 것들은 가슴을 덧대어 늘리고 |
막힌 곳은 물꼬 트듯 터주고 불어난 것들 돌려 막으며 |
무지개실로 한 땀 한 땀 땀구슬을 꿰어 서러움까지 깁고 있다 |
무더운 여름 낡은 그림자를 감싸 안고 찌르륵 찌르륵 |
희망은 촘촘 재생 시키고 구겨진 자존심은 반듯하게 세워 돌려준다 |
일감이 쌓일수록 신나는 재봉틀 오늘도 허밍허밍 즐겁다 |
별별 조각난 별들을 모아 퀼트 하는 밤 |
바늘 끝에서 노란 달맞이꽃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 제11회 수주문학상 대상작 |
2015 07.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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