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vane - Cees Tol & Thomas Tol |
느티나무 여자
안도현
평생 동안 쌔빠지게 땅에 머리를 처박고 사느라
자기 자신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가을날, 잎을 떨어뜨리는 곳까지가
삶의 면적인 줄 아는
저 느티나무
두 팔과 두 다리로 허공을 헤집다가
자기 시간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햇빛이며 바람이며 새들이 놀다 갈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고, 괜찮다고,
애써 성성한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어 보이는
허리가 가슴둘레보다 굵으며
관광버스 타고 내장산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저 다소곳한 늙은 여자
저 늙은 여자도
딱 한 번 뒤집혀보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땅에 박힌 머리채를 송두리째 들어올린 뒤에,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
- 시집『아무것도아닌것에대하여』(문학동네, 2005)
* 아침의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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