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김재진

향기로운 재스민 2017. 9. 15. 05:52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치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번이나 세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보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그림자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시집『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시와, 2012)

...................................................................


 살다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할 때가 있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 사랑했던 사람과의 원치 않은 이별,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마음을 다쳤을 때에 특히 그렇다. 그때 곁에서 위로해줄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있다 해도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한마디가 위로의 언사가 되었던 것이다. 시인은 자기감정의 개입을 최대한 절제한 채 담담하게 말한다. 마치 무표정한 의사가 환자에게 진통제를 천천히 주사하는 것처럼. 1997년 초판 이후 시집으로서는 드물게 수십만 부가 팔려나갔던 이유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모순적인 사실을 동시에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친구를 만들고, 연인을 사귀고,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 혼자 있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것들은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깊은 내면에서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은 건드릴 수도 침범할 수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리 속에서 동떨어져 있으면 왠지 소외되는 것 같아 외로움을 타고 불편해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편안함에 길들여진 탓이리라.


  영국의 문인 부르크가 어느 날 사람 속에 섞여있어도 바람을 피워도 글을 쓰면서도 무언지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훌쩍 여행이나 떠나볼까 하고 미국행 배를 타기위해 항구로 나갔다. 부두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과 이를 전송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부르크를 배웅하려고 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거기서도 외롭고 서글픈 생각이 든 부르크는 부둣가에서 놀고 있는 한 아이에게 얘야! 내가 너에게 6실링을 줄 테니 내가 저 배를 타고 떠날 때,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좀 흔들어 줄래?”라고 부탁을 했다.


  6실링은 천원쯤 되는 돈이다. 돈을 받은 아이는 정말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나 부르크는 그날 일기에 돈 받고 흔드는 손을 보고 나는 더욱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라고 썼다. 사람은 삶이 두려워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소사이어티를 만들지만, 그 상습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홀로 존재함의 엄숙하고도 고결한 인식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게마인샤프트이건 게젤샤프트에서든 상관이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고독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해야 하리. 혼자일 때나 사람 속에 섞여 있을 때나 문득 생각하면 다 외롭다. 혼자가 아니라고 발버둥 칠 까닭은 없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만큼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어제도 난 혼자라는 사실을 잊고 잠들었다. 밤을 울리며 떨어지는 웃음소리 뒤에 남는 공허. 뒤에 오는 침묵의 진공. 혼자 빠져드는 밤. 다시 눈을 뜨자 감정이 좀 뭉툭해졌다. 이 가을은 홀로 바람소리를 챙겨 떠나기 좋은 담대한 계절. ‘미워하던 사람도 용서하고 싶은, 그립던 것들마저 덤덤해지는



권순진

 


'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연두〕연둣빛 인생을 시작하다  (0) 2017.09.25
최승자 시 모음  (0) 2017.09.15
옥수수(玉蜀黍 ) /김상호  (0) 2017.09.08
마광수 시인의 시  (0) 2017.09.08
높임말, 슬픈 종착, 첫사랑, 까짓것/이정록   (0) 2017.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