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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두〕연둣빛 인생을 시작하다

향기로운 재스민 2017. 9. 25. 17:44



 Are You There _

   

연둣빛 인생을 시작하다
신연두

개명을 하고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어차피 바뀌어야 할 운명이라 치자
시인의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대로였겠지
詩아버지1)를 만나 인생의 행진이 다시 시작되었다
법원의 벽 사이로 아지랑이가 아롱거릴 때
내 눈가에도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가물가물 껌벅기리며 무단행단을 강행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시야가 흐려졌다
아버지가 뿌연 황사 숲에서 걸어 오신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이름을 개명하면 날아갈 듯
가벼운 마음일줄 알았건만 내 뿌리들이
머리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벌떼들이 작은 머리통에 달려들어 열꽃을 만들었다

운명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나는 그 해 어느 날 호적이란 판에 박혀 있다
그래, 난 갓난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고향집 뜰방에 얼굴을 내밀고 되돌아왔다
부모님 잠깐 뵈니 가슴이 설레 한참이나
길가 울타리 꽃을 바라보았다
콧잔등은 시나브로 시큰시큰하고
오늘따라 하늘도 무겁게 내려앉는다
어머니는 여전히 엷은 미소를 띄고
내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박수를 보낸다
오늘 밤은 별님도 달님도 유난히
반짝반짝 내려앉아 풀섶을 기어다닌다
초록으로 가기 전 그 모습으로 살아가자고
부드러운 이름, 연두에게 악수를 한다

*1)김순진 교수님


『이슬의 어원』 신연두 시집 에서....
전남 고흥출생
계간 「스토리 문학」등단
도봉구 백일장 준장원
전국 김소월 백일장 차상  
동인지 「새소리 밥상」
           「가슴에 이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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