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온통 소지 손톱만한 순으로 돋아 오르는 걸 보면 가만 앉아서도 세상 이치 알 것 같다 나무가 어찌 마음의 문을 여는지 샛강에 가라앉은 돌멩이의 숨구멍은 어디에 붙었는지 꽃들은 어쩌자고 앞 다투어 피고 지는지 그 꽃들의 눈망울을 보면 사람들의 꿈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다 알 것 같다 3월 꽃순이 마음이 저리 너르고 곱구나 겨우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는데 이리오라 손짓하며 가만 안겨보란다 욱신거리는 영혼의 근육통에 꽃잎 파스 한 장 살그머니 붙여주겠다 한쪽 눈 껌벅인다 그래도 냉큼 안기지 못해 서성대는 녹슬고 객쩍은 꼬락서니라니 아무 토 달지 않고 받아 주리라 믿긴 하였어도 주저하는 내 어깨 위로 오늘은 후드득 하얀 꽃잎 세례 무더기다-「낙법落法」(문학공원, 2011) -
코끼리와 시인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았다. 한 장님은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장님은 코끼리는 큰 배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나머지 장님은 코끼리는 가는 뱀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이 장님들은 저마다의 코끼리의 다리.배.꼬리를 만져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만일, 이 코끼리를 '삶'이라 부르기로 하자. 개별 과학이란 것은 저마다 자기가 택한 테두리 안에서 삶을 본다. 모든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 개별 과학의 본질이다. 아무리 정밀할망정, 과학은 전체적인 접근을 스스로 삼간 데서 오는 부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과학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것 자체가 전체적인 인식인 것처럼 생각한 다면 그 과학은 이야기의 장님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철학자라고 하는 사람을 코끼리 앞에 데려 왔다고 하자. 그는 뜬 눈으로 코끼리를 보는 사람에다 비유할 수 있다. 그는 덩치 큰 짐승이라고 볼 것이다. 철학자는 '삶'을 전체적으로 관련시켜서 본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와서 코끼리를 보았다고 하자. 그는 코끼리가 먼 나라에서 와서 먹이를 먹지 못하여 병들어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눈물을 흘렸다고 하자. 이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코끼리를 관찰하거나 생각한 것이 아니고 느낀 것이다. 그는 코끼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 「바다의 편지」(삼인,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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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푸른하늘저편 원글보기
메모 : 언제 쯤 다시 꽃잎 세례를 받을 수 있으려나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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