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2

[스크랩] 봄비에 잠기다 / 강수정

향기로운 재스민 2012. 3. 18. 14:59

 

 

 

봄비에 잠기다 / 강수정

 

 

빗소리, 귀를 잡아당긴다

물소리 보다 빗소리는 통통해,

봄비 소리는 실크의 은밀한 움직임이야

부드러운 바람처럼 몸을 밟고 몸속이 젖고있어

끝없이 길을 가고있어

갈증에 몸 비틀던 상처 속으로 흙 일으켜 세우고 있어

꽃 걸어오는 길 소풍 가자고 쉬운 암호 보내지만

빗장 건 마음은 웅크리고 있어

유리 고드름 심장 박혀 녹일 수 없지

따뜻한 손 빌려줘 가슴을 눕히고 쉽게 눕는 것 네 운명이지

미끈거리는 체내, 깜박 놓친 기억이 파랗게 갇혀있어

부셔버리자 떨리는 소식이 걸어오고 있어

싸르륵싸르륵 실크의 은밀한 움직임으로

봄비 소리 새들 잠 깨우고

꼭 안아보고 싶은 새 한 마리

저 봄비 속에 넘실거리며

 

- 시집 <재즈가 흐르는 창 너머 비행기 한 대가> (문학과 경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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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순풍조 민안락(雨順風調 民安樂)’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가 순조롭게 내리고 바람이 조화롭게 불면 백성이 편안하고 즐겁다는 뜻입니다. 비 가운데서도 봄비는 생명이고 기다림이며 희망입니다. 이 봄비로 말미암아 가문 대지의 숨결이 살아나고, 이 땅에 살아가는 뭇 생명의 생기도 살아날 것입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초목뿐 아니라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도 내리는 봄비에 설렙니다. 가슴을 쭉 펴고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고, 격조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며, 잉크가 말라가는 볼펜으로 뭔가 끼적이기도 합니다.

 

 ‘봄비 소리는 실크의 은밀한 움직임’으로 온몸을 안마하듯 조곤조곤 밟고 지나갑니다. 자기도 모르게 빗장 건 마음이 열려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고정희 시인도 ‘봄비’를 보고 마냥 예쁘다고 노래했습니다. “가슴 밑으로 흘러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그리고서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고 조용히 갈망하였습니다. 그 선명한 음색의 봄비는 모든 것을 씻겨주면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해줍니다. 봄비와 함께 ‘떨리는 소식이 걸어오고 있어’ ‘꼭 안아보고 싶은 새 한 마리 저 봄비 속에 넘실거리며’오고 있습니다. 고운이나 미운 이에게나 풀이나 나무나, 산이나 강이나 초원이나 두루 넘실대며 희망의 전령사로 오고 있습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봄비... 가슴속의 봄비는 항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