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를 씻으며/김방주
얘야! 입동 지나고 사흘 뒤면 김장을 해도 된다
마당 있는 집이 아니라도
달력 아래 써져있는 '입동' 이란 글자를 짚는다
마치 그날 엄마를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절인 배춧잎 한 장에 양념무채 둥글게 말아 입에 넣어드리며
엄마의 입맛이 그해 김장 맛을 결정한다고
간을 보아 달라곤 했다
"이제 몇 번이나 더 김장배추 속을 맛볼 수 있을꼬'
내가 그 말 이어받아 다시 김장철이다
맛있는 김장이 가문의 품격인양 배추부터 꼼꼼히 고른다
다른 약속도 일도 만들지 않는다
엄마는 내일이 입동 지나고 사흘째란 사실을 아시려나
무를 수세미로 빡빡 씻으며 쪽파를 하나씩 다듬는 날
멀리 어디선가 "얘야, 이제는 혼자 할 수 있겠니?"
환청처럼 들릴 때 가만 엄마를 두 번 불러본다
엄마, 엄마....
아직 양파도 안만지는데 코가 맵다
2017. 겨울 15호 시와시와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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