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카테고리

[김방주] 무를 씻으며

향기로운 재스민 2017. 12. 29. 16:55



무를 씻으며/김방주

 

얘야! 입동 지나고 사흘 뒤면 김장을 해도 된다

마당 있는 집이 아니라도

달력 아래 써져있는 '입동' 이란 글자를 짚는다

마치 그날 엄마를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절인 배춧잎 한 장에 양념무채 둥글게 말아 입에 넣어드리며

엄마의 입맛이 그해 김장 맛을 결정한다고

간을 보아 달라곤 했다

"이제 몇 번이나 더 김장배추 속을 맛볼 수 있을꼬'


내가 그 말 이어받아 다시 김장철이다

맛있는 김장이 가문의 품격인양 배추부터 꼼꼼히 고른다

다른 약속도 일도 만들지 않는다

엄마는 내일이 입동 지나고 사흘째란 사실을 아시려나


무를 수세미로 빡빡 씻으며 쪽파를 하나씩 다듬는 날

멀리 어디선가 "얘야, 이제는 혼자 할 수 있겠니?"

환청처럼 들릴 때 가만 엄마를 두 번 불러본다

엄마, 엄마....

아직 양파도 안만지는데 코가 맵다



2017. 겨울 15호  시와시와  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