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뛰지 않는다/권순진
날마다 먹고 먹히는
강한 자가 지배하지도
약한 자가 지배당하지도 않는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갔다
잡아먹을 것 없으니
잡아먹힐 두려움이 없다
먹이를 쫓을 일도
부리나케 몸을 숨길 일도 없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
명을 재촉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
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그저 참아내고 모른 척한다
모래 위의 삶은 그저 긴 여행일 뿐
움푹 팬 발자국에
빗물이라도 고여 들면 고맙고
가시 돋친 꽃일망정 예쁘게 피어주면
큰 눈 한번 끔뻑함으로 그뿐
낙타는 사막을 달리지 않는다
[낙타는 뛰지 않는다] 권순진 시집
學而思 학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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