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래깃국/양문규

향기로운 재스민 2015. 9. 23. 07:16


시래깃국 

양문규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잔바람에도 뚝뚝 살을 내려놓는 늙은 감나무

열락과 고통이 눈 속으로 젖어드는 늦은 저녁

아버지와 시래깃국에 밥 말아 먹는다

세상 어떤 국이

얼룩진 자국 한 점 남김없이 지워낼 수 있을까

푸른 빛깔과 향기로 맑게 피어날 수 있을까

또 다른 어떤 국이

자잘한 행복으로 밥상에 오를 수 있을까

저렇게 부자간의 사랑 오롯이 지켜낼 수 있을까

어느 때라도 “시래깃국” 하고 부르면

일흔이 한참 넘은 아버지와

쉰을 갓 넘긴 아들이 아무런 통증 없이

공기 속을 빠져나온 햇살처럼 마주앉아 있으리라

세상은 시리고도 따뜻한 것이라고

내 가족 이웃들과 함께

함박눈을 밟고 겨울 들판을 휑하니 다녀와서

시래깃국 한 사발에 또다시 봄을 기다리는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시래기 나물을 냉동실에서 꺼내어 물에 녹혀 나물로 볶아 먹으려다가...

 고사리 토란줄기를 꺼내어 파 양파 마늘 고추가루기름 내어 쇠고기랑 육개장을 끓이는 날.

  다시 읽어보려고.

 

 

2015. 09. 23   향기로운 재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