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부부/반칠환 은행나무 부부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 문서 2014.07.07
바퀴/전향 바퀴 전 향 마음이 다 맞으면 붙어 떨어지지 않을거고 마음이 하나도 맞지 않으며 공회전 하느라 언제나 그 자리겠지만 이러쿵 저러쿵 해도 세상이 굴러가는 것은 한 점,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점이 너랑 나랑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이 오는 것이다 내가.. 문서 2014.07.04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 문서 2014.07.01
화염경배/이면우 화염경배/ 이면우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 내는 여자를 .. 문서 2014.07.01
다시 읽은 글/향기로운 재스민 衛靈公이 問陳於孔子한대 孔子 對曰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 하시고 明日에 遂行하시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 치는 법을 물으니, 공자께서 "예법에 관한 일은 일찍이 들었으나, 군사(軍事)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배가 산으로 올라가겠다..... 문서 2014.06.18
날아라 버스야/정현종(1939 _) 날아라 버스야 정현종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 꽃다발을 든 사람이 무려 두사람이나 있다 하나는 장미 _ 여자 하나는 국화 _ 남자. 버스야 아무데로나 가거라. 꽃다발 든 사람이 둘이나 된다. 그러니 아무데로나 가거라. 옳지 이륙을 하는구나! 날아라 버스야. 이륙을 하여 고도를 높여가.. 문서 2014.06.16
장마/최 옥 장마 / 최 옥 일년에 한 번은 실컷 울어버려야 했다 흐르지 못해 곪은 것들을 흘려보내야 했다 부질없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려야 했다 눅눅한 벽에서 혼자 삭아가던 못도 한번쯤 옮겨 앉고 싶다는 생각에 젖고 꽃들은 조용히 꽃잎을 떨구어야 할 시간 울어서 무엇이 될 수 없듯이 .. 문서 2014.06.13
아내의 계명/임보 아내의 계명/ 임 보 늘 하는 훈계지만 전기밥솥에서 밥을 뜰 때는 숟가락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저녁도 혼자 매실주 한잔 마시다가 (아내는 부재중) 밥솥에서 몇 숟갈 밥을 뜬다 밥주걱 찾기가 귀찮아 아내의 계명을 어기고 그냥 숟가락으로 밥을 푼다 아차, 숟가락 끝이 밥통 바.. 문서 2014.06.12
범인/신미균 범인/ 신미균 시커먼 홍합들이 입을 꼭 다물고 잔뜩 모여 있을 땐 어떤 것이 썩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팔팔 끓는 물에 넣어 팔팔 끓인다. 다들 시원하게 속을 보여주는데 끝까지 입 다물고 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간신히 열어보면 구린내를 풍기며 썩어있다. -『포엠포엠』 2013·가을 Vol,59.. 문서 201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