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김순진 해는 김순진 해는 연기 없이 타는 줄 아니 낮 동안 그을린 하늘은 까만 밤이 되고 해는 소리 없이 타는 줄 아니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고 해는 눈물 없이 타는 줄 아니 깊은 슬픔 마침내 소나기 뿌리고 해는 날마다 신나게 타는 줄 아니 시큰둥 타다가 겨울이 되고 해는 스스로 타는 줄 아.. 문서 2015.06.03
월훈/박용래 월훈月暈 박용래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 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 문서 2015.05.27
봄날은 간다/이동순 봄날은 간다 이동순 진달래야 진달래야 이 봄이 저리도 깊었는데 저문 산길에서 너는 혼자 누굴 기다리고 섰니 기다림에 지쳐 그 눈물 젖은 분홍 손수건을 발 아래 떨구고 너의 두 볼은 못내 창백하기까지 하구나 진달래야 진달래야 하루해도 덧없이 저물었는데 네가 기다리는 사람은 얼.. 문서 2015.05.26
귤꽃 앞에서/임보 귤꽃 앞에서 임보 어떤 시인은 죽음을 일러 모차르트를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아침 나도 한 그루 귤나무 앞에서 아부한다 죽음은 나로부터 네 향기를 앗아간 것이라고… (임보·시인, 1940-) 2015. 05 . 25 문서 2015.05.25
근황/공광규 근황 공광규 요즘 괄약근이 헐거워졌는지 방귀가 픽픽 자주 샌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도 사무실이나 젊은 여자들과 둘러앉아 공부하는 동안에도 방귀가 새어 난감하다 어제는 화장실 변기 물을 안 내려 벌써 치매냐고 공격하는 아내와 말싸움을 하고 오늘은 돋보기를 한참이나 이 방 .. 문서 2015.05.12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문태준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당신은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네 요를 깔고 아주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있네 한층의 재가 당신의 몸을 덮은 듯하네 눈도 입도 코도 가늘어지고 작아지고 낮아졌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서리가 빛에 차차 마르듯이 숨결이 마르고 있네 당.. 문서 2015.05.03
오, 어쩌면 좋아/박소유 오, 어쩌면 좋아 박소유 뼈만 남은 사연이 함께 굴러 갈 동안 바퀴 따라가는 생은 모두 급하네 벼락같은 속도를 얻었으니 저게 모두 발자국이라면 내 발자국도 흔적 없을 터 차라리 눈발이거나 서릿발 같이 가볍거나 아득했으면 좋겠네 구부러진 노인이 오그라든 유모차를 밀며 가네 서둘.. 문서 2015.04.27
[스크랩] 오늘 / 구상 오늘 /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 문서 2015.04.23
浪吟[랑음] 朴遂良[박수량] 浪吟[랑음] 朴遂良[박수량] 함부로 읊다. 口耳聾啞久[구이농아구] : 입과 귀는 귀머거리에 벙어리된지 오래나 猶餘兩眼存[유여양안존] : 오히려 나머지 두 눈은 살펴볼 수 있다네. 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 : 떠들썩하고 뒤숭숭한 세상의 일에 能見不能言[능견불능언] : 볼 수는 있어도 말할.. 문서 2015.04.22